채사장의 장편소설 '소마'에서 나는 이오페와 관련된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오페는 소마가 파괴한 마을에서 데려온 가족을 잃은 눈먼 여자아이로 소마가 유일하게 마음을 내어준 인물이다.둘의 대화중소마가 이오페에게 물었다.소마 : "어둠을 보는가?"이오페 : "어둠을 보지 않습니다."소마 : "빛을 보는가?"이오페 : "빛을 보지 않습니다."소마 : "나는 궁금하다 너는 무엇을 보는가? 그것은 칠흑 같은 어둠인가, 아니면 그림자 없는 새하얀 빛인가?" 이오페 : "수많은 인상을 봅니다. 귀로 듣는 것을 보고, 코로 들이마신 것을 보고, 혀에 닿는 것을 보고, 피부에 스치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어둠도 아니고 빛도 아닙니다. 단일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것입니다."언젠가 그런 체험 전시에 간 적이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을 오로지 인도자의 목소리에만 의존하여 시각을 제외한 다른 모든 감각 기관들로만 공간을 경험하는 전시였다. 거기에는 여러 사람들이 팀을 짜서 함께 이동하는데 그 어둠 속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은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전시가 끝나고 불이 밝아진 공간에서는 서로가 어색에 겨워 쭈뼛쭈뼛한 상태에서 전시장을 나갔던 기억이 있다. 우린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시각적인 것으로 판단한다.누군가의 첫인상, 선한 것과 악한 것, 아름다운 것과 그렇지 못한 것 등..하지만 어둠 속에선 그 모든 것들이 의미를 잃는다.우리가 이분법적으로 나누던 것들이 그저 허공에 존재함으로써 진정 순수한 모습을 갖추게 되는 순간임을 느낄 수 있다.소마는 그런 이오페의 모습에서 그동안 가닿지 못했던 순수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그 아이에게 마음을 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세상은 여러 복잡한 인과관계 속에 뒤덮여 있지만 우린 시각적인 판단으로,아니 굳이 시각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편견과 고정관념들로 의해 여러 상황들을 재단하고 판단 내린다.그렇게 우린 폭력을 행사하고 그런 폭력 안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요즘 드는 생각은, 지식과 물질은 행복으로 향하는 길이 아닌 것 같단 생각이다.알면 알수록 모르겠는 것이 대부분이고 무언가 대단한 것을 알고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내 정신을 욕망에서 해방시켜주지는 못한다. 이오페와 같이 세상에 다양한 것들을 판단 없이 다채롭게 느끼고 그 순간들에 행복과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물질적으로 조금은 부족하더라도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모습이 아닐까. 우린 모두 그것이 답이라는 것을 알고있지만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